심리학을 기반으로 하지 않은 결정은 없습니다.
심리학은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의 기저에 깔려 있습니다.
장사든 인생이든 성공하기 위해서 알아야 하는 심리학 지식과 요령들은 무수히 많습니다.
'더 시스템' 스콧 애덤스가 꼭 알아야 한다는 심리학 용어들에 대해 정리해 보겠습니다.
본질주의(Essentialism)
본질주의는 어떤 임의의 대상이, 그 대상으로 불릴 수 있게 하는 일련의 속성을 가지고 있다고 보는 견해입니다.
도킨스는 "본질주의"를 버려야 한다고 했습니다.
1) 본줄주의는 인종차벽적 용에데서도 영향을 준다.
'아프리칸 아메리칸'
아프리칸은 여러 인종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지만,
본질주의적 사고방식으로 인해 미국에서 나고 자란 사람을 아프리칸 아메리칸 이라고 인종을 표시하는 행위
2)낙태문제
태아는 하나의 세포에서 갓난아기가 될 때까지 서서히 성장합니다.
그 사이에 '인간다움'이 등장하는 특별한 순간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사실 선경계가 발달하지 않은 초기 단계의 태아는 어떤 공포와 고통도 느끼지 않을테지만,
사람들은 가축을 죽일 때보다 더 큰 도덕적 부담을 느껴야 합니다.
인간과 침팬지의 공통조상을 거슬러 올라가면 거의 같은 즉성을 지녔고,
과거의 영장류들이 오늘날까지 모두 생존해있다면 더덕주의자들은 그들의 본질주의를 진작에 포기했을 것이며,
인간이 다른 동물들보다 특별하다고 구별하는 습관 역시 버렸을 것입니다.
심리학자들에 따르면 인간은 어릴때부터 본질주위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이 되지 않는다.'
호박을 결정하는 핵심적 특징이나 유전자가 바퀴지 않았다면
호박은 여전히 호박, 수박은 여전히 수박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갖고 있는 속성은 노력이나 환경의 변함없이 유지된다는 생각은 곳곳에서 발견 할 수 있습니다.
남성과 여성 사이에는 극복할 수 없는 근복적인 차이가 있기 때문에
다른 성별처럼 행동하려 노력해도 한계가 있다는 믿음도 본질주의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수저 색깔이 성공을 결정한다는 수저계급론 역시 계급에 대한 본질주의로 불 수 있습니다.
이처럼 인종, 성적지향, 성격, 민족성, 건강 등 무엇이든 본질주의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작가, 김재광님의 생각...
저는 최근에 목사님이랑 이야기를 하다가 우리는 하나님의 목적에 의해 이 땅에 나왔으니 그 목적에 맞게 살아야 한다는 식의 이야기를 듣고 고객를 갸우뚱했었는데 반박할 기회를 갖지 못하고 그 대화를 끝낸 적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어릴적 학생 시절에 "학생의 본분은 공부이니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고,
심지어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가지고 이 땅에 태어났다"는 구절을 암송해야 했었습니다.
도대체 우리가 해야 할 사명이 뭐가 그리도 많고 거창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집단주의적 이념들에 대해 반감을 가지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아직도 그 잔재가 우리의 생각 깊숙한 곳에 남아서 가끔씩 저 자신을 속박하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제가 그런 의심을 하게 된 것은 SNS에서 타인을 관찰하면서인데
SNS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욕망과 감정을 적나라하게 배출하곤 합니다.
당연히 민감한 정치적 사건들에서는 그런 감정 표출을 더 많이 목격합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지점은 어떤 구조적 모순이나 제도적 불합리에 대한 고민 보다는
이미지나 말초적인 사건에 더 그런 감정이 표현된다는 것입니다.
진정한 의미에서 한국의 정치발전을 위한 고민을 한다기 보다는
정치를 감정적으로 소비하는 경향이 있고
특히 자기 내면이 단단하지 않은 사람들일수록 타인을 비난하는데 열중하고
또 정치에 과잉 몰입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궁금했던 부분은 어떤 심리적 요인들이 사람들로 하여금 특정 집단(종교 집단이나 정치집단)에 대해
맹목적인 충성이나 반감을 갖게 만드는 것인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것이 우리가 받은 집단주의적 교육의 후유증이라고 생각하지만
동일한 교육을 받고도 그러한 문제점을 잘 극복하고 균형감과 냉정을 유지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고 정서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자세를 보이는 사람이 있으니
그 차이가 무엇 때문인지 굼금했습니다.
저는 이러한 질문에 대한 잠정적인 대답으로
"본질주의"적 사고가 우리 가운데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본질주의는 우리 존재에게 어떤 본질적인 목적이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우리 존재 자체의 가치보다는 어떤 집단의 목적을 위한 수단적 가치를 강조할 때 그런 생각을 가질 것입니다.
국가라는 유기체의 일원으로 우리를 인식하면
우리는 국가를 위해 존재하고 국가에 필요한 어떤 기능을 담당하는 구성원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일례로 학생의 본분이라는 단어가 본질주의적 사고를 나타내는 말입니다.
"매국노"는 이러한 국가의 구성원으로서의 마땅히 해야할 본질에 충실하지 못한 사람을 지칭하므로
이러한 낙인찍기를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최근 유행하는 친일파 프레임도 마찬가지 기능을 하는 것입니다.
친일파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가능성 만으로도 우리의 행동과 발언은 상당히 제약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본질주의의 문제는 우리에게 어떤 본질과 관련된 프레임을 통해
생각과 행동의 자유를 제한당하는 위험이 숨어있다는 것입니다.
그게 "애국자/매국노"프레임에서는 보다 명시적으로 드러나지만
정치 과잉에는 보다 은연중에 일어나고 있습니다.
정치과잉을 하는 사람의 기본 심리에는 "우리는 우리 사회에 기여하는 유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라는
믿음이 전제되어 있는 것입니다.
본인의 사회적 유용성에 대한 의심이 정치 관잉이라는
심리적 방어기제를 통해서 감추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본인의 정치적 의견표명이 사회 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믿고
이에 몰입함으로써 어떤 심리적 보상이나 정신적 쾌감을 얻고자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밥버러지 같은 인간"이라는 표현을 예전부터 수치스럽게 생각하는 문화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기는 아직 사회적으로 가치있는 존재라는걸 증명하고 싶은데
보이는 것으로는 이를 확신할 수 없을 때 그 사람은 다른 방식으로 증명을 하려는 것입니다.
본질주의의 함정은 이미 예전에 프랑스의 실존주의 철학자 샤르트르가 주목한 바이고
그로부터 벋어 날 길도 함께 제시했습니다.
"실존은 본질에 우선한다"라는 선언에서 나타나듯이
우리 인간의 존재에 어떤 본질적 관념을 부여하는 것을 거부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자유를 과소평가하지 말라"는
샤르트르 선생의 말씀은 이런 본질주의의 함정에 빠지지 않게 하고
우리에게 보다 큰 자유의 선택권이 있음을 깨닫게 하는 말씀입니다.
설령 내가 지금 "밥버러지 같은 인간"으로 살면 어떻습니까?
타인이 주입한 가치관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노예로 사는 것보다 휠씬 더 나은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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